내면의 발견 두번째 공간, 수원 틀

1794년, 정조는 이곳에 성을 쌓았다. 백성을 품는 그릇, 삶을 지키는 틀. 화서문은 그 서쪽의 문이다.
사각 문루 위에 반달형 옹성이 겹쳐진,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곳.
하지만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은 성보다 먼저 있었다.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물, 수원천을 따라 모인 사람들.
물이 있었기에 마을이 생겼고, 마을이 있었기에 성이 필요했다. 틀보다 먼저 물이 흘렀다.
물은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계곡을 이루고 못을 이루고 샘이 된다.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비가 되어 다시 내린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만나는 온도에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생명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이 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릇을 만들고 우물을 파고 수로를 냈다.
정조는 화성을 쌓으며 수원천의 물길을 정비하고, 성벽에 수문을 만들어 물이 드나들게 했다. 틀 안에 물을 담아 시간이 이어지게 했다.
겨울의 물을 봄까지 간직하고, 여름의 물을 가을까지 이어가며, 사람들은 계절을 넘어 살아갔다.
200년이 흘렀다. 성벽의 돌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이끼가 자랐다. 수문 아래 물은 돌을 깎아냈다. 성곽을 따라 집이 들어서고 골목이 생겼다.
전쟁으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낡은 기와를 바꾸고, 페인트를 덧칠했다. 물은 천천히 틀을 바꾸고, 삶도 틀을 바꿨다.